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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런::모르던 것들

태정태세문단세

고대/ 중세의 동아시아에는 왕을 칭하는 규칙이 있었고, 이것을 '시법'이라고 했다.

 

죽은 왕에 대한 호칭을 시호라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교과서에 등장하는?) 삼국시대의 왕들을 보면

 

고구려는 왕의 시신을 매장한 장지를 시호로 정하는 스타일이었다. 고국천왕과 고국원왕은 '고국천원(故國川原)'에 묻혀서 고국천왕, 고국원왕으로 불리고, 소수림왕은 소수림(小獸林)에 묻혀서 소수림왕이 되었다.

 

고구려 19대 광개토대왕은 광개토대왕릉비에 나오는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에서 유래했고, 삼국사기에 '광개토왕'이라 표기했다. 영토를 크게 넓힌 왕이란 뜻이다.

고구려 20대 장수왕은 97세까지 살아서 장수왕이라는 시호를 얻었다. 삼국시대에 97세라니 믿을 수가 없다. 그 시대 사람들도 얼마나 놀랐으면 이름을 장수왕으로 지었겠나 싶다.

 

이러다가 점차 중국에서 유래한 시법을 적용하게 되었다. 시법은 각각의 뜻을 가진 100여개의 글자를 이용해서 전왕의 업적을 표현하는 것이라 시호를 보면 후대의 평가를 짐작할 수 있다.

 

태, 세, 고 같은 글자는 일단 최고 좋은 글자이고,

성, 무, 문, 경, 선, 명 같은 글자도 각각 좋은 의미를 가진 글자이다.

유, 조, 양 처럼 나쁜 의미를 가진 글자도 있다.

 

뒷 글자는 조, 혹은 종을 썼는데, 왕조를 개척했거나 그에 준하는 업적을 이루면 '조', 선왕의 적자면 '종' 을 사용했다.

 

그러다보니 사후에 어떤 글자로 정하는가는 당시의 정치적인 상황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세조, 인조는 선왕의 적자가 아니면서 왕권을 빼앗은 왕에게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조'를 사용했다.

왕의 적자가 아니었던 선조는 원래 선종이었으나 광해군이 정통성을 확보하기위해 선조로 바꿨고,

영조, 정조, 순조는 원래 영종, 정종(正宗), 순종이었는데 이후에 비슷한 이유로 바뀌었다.

 

성종은 숙부인 예종의 양자로 입적하여 즉위했으나 즉위 후에 '의경왕'으로 불리던 친아버지 의경세자를 '덕종'으로 추존하였다. 조선에는 왕인 적이 없는 왕이 있었던 것이다.

 

조선 정종은 명나라가 조선국왕으로 인정하기 전에 태종에게 양위했기 때문에 조카인 세종이 즉위한 다음해에 승하했으나 오랫동안 묘호를 받지 못하고 공정왕으로 남아 있다 죽은지 262년이나 지나서 숙종 때 정종(定宗)이란 묘호를 받을 수 있었다.

 

노산군도 숙종때나 단종이란 묘호를 받았으니1680년까지는 태공태세문노세로 외워야했던 것.